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발명해 낸 건지 공갈 젖꼭지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획기적인 물건입니다.
보채고 우는 아이 입에 공갈 젖꼭지를 물려주면 이내 울음을 멈추고 얌전해지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어느 식당에서 어린 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 입에는 공갈 젖꼭지가 물려 있었습니다.
엄마,아빠가 식사하는 동안 공갈 젖꼭지로 잘 버티던 아이는
후식을 먹을 때쯤에는 보채기 시작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보채는 아이를 엄마가 데리고 나가 젖을 먹이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선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설교가 혹시 공갈 젖꼭지를 성도들 입에 물려는 것은 아닌가?”
공갈 젖꼭지는 말 그대로 공갈,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인 척하는 임시방편입니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잠시 조용하게 하려고, 혹은 잠재우기 위해 젖을 먹는 양 착각하게 하는 진정제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공갈 젖꼭지를 빨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엄마의 젖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해야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 같아도 예배때 잠시뿐이고,
곧 옛 모습으로 돌아가 보채는 아이처럼 배고프다고 계속 울어대는 것은
설교자가 공갈 젖꼭지만 물려주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강단에서 들려지는 설교는 강의도, 웅변도 아닙니다.
지루하고 졸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면 우리 영혼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신령한 젖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유를 먹으며 아이가 자라가듯이 말씀 속에서 성숙하게 자라가야 합니다.
강단의 설교에 귀와 눈을 닫게 된다면 영적 건강의 적신호입니다.
설교가 맛이 없어도, 심지어 쓰다고 해도 먹는 자가 살아납니다.
(임성택 목사)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