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심 선교사는 지난 7월 성천상 수상자로 발표된 후 국내 언론들의 집중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말라위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그의 이야기는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선교사로 갔으니까, 제 삶이고 사명이지요”라며
“아이들 눈망울을 보면 희망이 보여요. 물론 힘들고 복잡한 생각들도 들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 마음이 느껴지지요.
곧 죽을 것만 같은 환자들이 건강해져 병원문을 나서는 모습도 큰 힘이지요”라고 말했다.
20살, 간호대학에 진학한 뒤 폭풍처럼 밀려들었던 고민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여름 봉사활동으로 찾았던 여수 애향원에서 변화를 맞았다고 했다.
“얼굴과 손발이 다 문드러진 나환자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간호사가 됐는가’ ‘왜 사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이유를 찾았다고 할까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6년간 일을 하다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아프리카 케냐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지원했어요. 국내든 해외든 나를 필
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1990년만 해도 아프리카는 낯설기만 했다.
김포공항에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부모님을 뒤로 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부모님이 공항에서 주저앉아 우셨다. 마음이 아팠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이었으니까….”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4년 뒤 더 열악한 말라위로 떠났다.
이동식 진료차량에 몸을 실었고 차량진입이 어려운 곳은 걸어서 환자들을 만났다.
흙먼지만 자욱한 곳에 주민들과 벽돌을 빚어 진료소를 일궜다.
늘 부족한 의료시설의 한계를 직면하던 중 어느 한국 해운회사 기업인의 도움으로
2008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180병상 규모의 대양누가병원을 설립했다.
2010년엔 간호대학과 정보통신기술대학 설립에 나서는 등 말라위 청년들에게 교육과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환자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 꿈은 말라위 상황이 나아져서 주변에 더 필요한 곳이 있다면
다시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말라위 수도 릴롱궤만 해도 국제구호단체도 있고 값비싼 시설도 들어와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열악합니다. 18세기를 보는 듯해요. 돌멩이 3개를 모아 냄비를 올려놓은
모습이 흔하니까요.
단 한 번의 인생, 그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