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의 첫 수상자는 스위스의 ‘헨리 듀넌트’(앙리 뒤낭)이었습니다.
그는 은행장 출신으로서 적십자사를 창립한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필 그가 나폴레옹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에 공교롭게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전쟁터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피비린내 나는 지옥 같은 전장에서
수많은 시체와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을 목격하고 나서 그는 부상자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를 만나 큰 사업을 펼치겠다는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이 땅에 폭력과 전쟁이 없어져야 하고, 부상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도와야 한다’라는 새로운 꿈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뜻 있는 친구들과 함께 부상자를 돕던 일이 적십자사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요즘 코로나19 감염전파로 교회와 목사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소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현재의 상황이 교회가 애매하게 핍박을 받는 상황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못드린다고 억울하게 핍박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로서 전혀 교회답지 못한 태도입니다.
억울한 핍박이 아니라 당연한 희생이어야 합니다.
일부교회의 일탈이 우리교회의 모습은 아니어도,
그것은 우리 교회가 속해있는 한국교회의 또 다른 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겸손히 교회의 본질과 성도의 본질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할 일은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신앙의 절정을 ‘섬김’에서 찾으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시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지위는 이웃을 섬기는 자가 얻었습니다.
가장 낮아진 교회의 요즘,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그러기 위해 살펴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임성택 목사)